



주송현 (반포잠원교육지원센터 센터장)
얼마 만에 마주한 온전한 몰입의 시간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화면 속 평면적인 영상이 아니라,
실제 무대 위에서 근육의 떨림과 호흡의 진동으로 살아 숨 쉬는
웨인 맥그리거(Wayne McGregor)의 <deepstaria> 작품을 드디어 만났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주한 이 무대는 단순한 관람을 넘어,
AI와 공존하는 오늘날 예술과 기술 그리고 인간의 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묵직한 질문을 남겼습니다.
웨인 맥그리거는 현대무용과 첨단 기술의 결합을 가장 선도적으로 실험해 온 거장입니다.
스튜디오 웨인 맥그리거의 예술감독이자 영국 로열발레단 최초의 현대무용가 출신 상주 안무가였던 그는
과학, 인공지능, 뉴미디어 등 다양한 영역과의 협업을 통해 동시대 무용의 확장을 꾸준히 실험해 왔습니다.
다만 그의 작업에서 기술은 결코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감각을 확장하고, 인지의 층위를 흔들며,
몸의 잠재력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매개 장치'에 가깝습니다.
그의 대표작들은 이를 일관되게 증명합니다.
<에이아이소마(AISOMA)>(2019): 맥그리거의 25년 안무 데이터와 무용수들의 스타일을 학습한 생성형 AI 에이전트입니다.
특정 포즈 이후의 움직임을 제안하는 이 AI는 맥그리거 스타일을 창작하는 '11번째 무용수'이자 비인간 안무가로서 기능합니다.





Documentary film: Google Arts and Culture Lab. 출처: Studio Wayne McGregor.
<매드애덤 MADDADDAM> (2022): 마거릿 애트우드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바탕으로
맥스 리히터의 음악과 조우한 이 작품은,
멸종과 발명의 경계에서 인간성의 본질을 탐구하며 우리 시대를 위한 강렬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Ashley Dean in MaddAddam at Royal Opera House, London. 출처: Studio Wayne McGregor.

Melissa Hamilton (Toby) in Wayne McGregor’s MADDADDAM. 출처: Studio Wayne McGregor.
<딥스타리아 Deepstaria>(2024): 최근작인 이 작품은 심해의 미지성과 인공지능 기반의 가변적 음향을 결합하여,
인간 내면의 심연을 무대 위에 펼쳐 보이며 감각의 확장을 시도한 작품입니다.
특히 무대는 빛의 99% 이상을 흡수하는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검정, ‘밴타블랙(Vantablack)’으로 칠해졌습니다.
맥그리거는 끝을 알 수 없는 칠흑 같은 공허 속에 살아 숨 쉬는 무용수들을 대비시키고자 했습니다.
그 어둠 속에서 무용수들은 해류라는 물리력에 의해 형태가 무너지고 접히는
‘액체 종이접기(origami)’와 같은 무정형의 신체 언어를 선보입니다.
가장 깊은 심해의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해파리처럼, 쇠락하도록 운명지어진 인간의 유한한 육체는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낯선 음향 환경과 끝없는 공허 위에서 오히려 '살아있음'의 경이로운 특권으로 더욱 선명하게 빛났습니다.

Jasiah Marshall and Jordan James Bridge


Jasiah Marshall in Wayne McGregor's Deepstaria

출처: Studio Wayne McGregor.
실제 공연을 보고 난 뒤 가장 선명하게 남은 것은 최첨단 연출의 화려함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모든 장치를 압도하는 무용수들의 '몸'이었습니다.
정교하고 폭발적인 춤 테크닉, 예민한 리듬 감각,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 집중력은 기술이라는 프레임을 통과하며
오히려 그 생명력을 더욱 명료하게 드러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중요한 예술적 통찰과 마주합니다.
춤의 핵심은 장치가 아니라,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를 연결하는 인간 신체의 '창조적 개입'에 있다는 점입니다.
의식적 통제를 넘어서는 신체 지능(Physical Intelligence),
즉 오랜 훈련과 감각의 축적을 통해 몸 스스로 판단하고 반응하며 생성해내는 고유한 지성이야말로
무용 예술의 본질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웨인 맥그리거의 예술은 오늘날 교육 현장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우리는 기술의 진보를 흔히 '인간의 대체'라는 언어로 이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예술의 영역에서 기술은 인간을 밀어내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 고유의 감각을 더 깊이 발굴하는 계기가 됩니다.
특히 몸을 매개로 하는 예술은 더욱 그렇습니다.
기술은 몸의 생동감을 복제할 수 없으며, 다만 그것을 비추고 확장할 뿐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전해야 할 교육의 본질 역시 최신 기술의 숙련도에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활용해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나만의 리듬과 서사를 만들어낼 것인가'입니다.
예술교육은 결국 인간 안의 상상력과 표현 의지를 발견하도록 돕는 과정이어야 하며,
기술은 그 여정을 풍요롭게 하는 파트너로서 존재해야 합니다.
웨인 맥그리거의 무대는 우리에게 설득력 있는 답을 주었습니다.
가장 미래적인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통과하면서도 끝내 자신만의 운동성을 잃지 않는 인간의 몸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술은 언제나 새로운 매체를 만나 변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의 중심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감각하고 반응하며 표현하는 '인간 자신'일 것입니다.
"시간을 앞서가는 가장 예리하고도 첨단적인 언어는, 결국 인간의 몸이었습니다." -주송현의 한 줄 공연평
지난 3월 27일 금요일 밤, 웨인 맥그리거의 <딥스타리아(Deepstaria)>가 선사한 매혹적인 무대는
기술이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신체 고유의 리듬과 생동감(liveness) 그리고 그 본질적인 가치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