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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장의 인사이트] 숙제처럼 살아온 삶에서, 축제처럼 살아갈 삶으로 2 - 제주에서 만난 변시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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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시2026-09-02 12:59:14

숙제처럼 살아온 삶에서, 축제처럼 살아갈 삶으로 2

- 제주에서 만난 변시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반포잠원교육지원센터장 주송현

 
 
 

버림으로써 비로소 채워지는 여백

 

 

변시지의 작품을 보며

가장 오래 머물렀던 생각은 덜어냄이었습니다.

 

고주고망, 1985

 

우리는 보통 화려한 이력과 성취,

더 많은 관계와 정보를 채워야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반대의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버림으로써 비로소 풍요로워지고,

가벼워질수록 오히려 깊어진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화면의 색이 줄어들자 비로소 각각의 색이 제 자리를 찾았고,

사물이 비워지자 남겨진 선 하나와 인물 한 명이 훨씬 선명해졌습니다.

 

그 순간 제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움켜쥐려 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말을 멈추니 주변의 소리와 타인의 표정이 보이고,

나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도 비로소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여백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미처 듣지 못했던 내면의 소리를 듣게 하는 통로였던 셈입니다.

 

 

 

 

혼자 떠나서야 비로소 보인 것들

 

 

이전까지 가족 여행을 떠나면 늘 누군가의 식사와 일정,

이동을 챙기느라 분주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말하는 여행을 통한 재충전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홀로 떠난 여행은 달랐습니다.

타인의 호흡에 맞출 필요 없이 걷고 싶은 만큼 걷고,

그림 한 점 앞에 오래 머물며,

북카페 창가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냈습니다.

 

조용한 정적 속에서 비로소 라는 사람을

조금 떨어진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무엇 때문에 아팠고 무엇을 붙잡느라 그토록 애써왔는지.

 

제주바다, 1978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던 피로와 부침을

제주의 바람과 파도에 실어 보냈습니다.

 

돌아오는 길,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고

작은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 나 혼자서도 꽤 괜찮구나.’

 

젊은 시절의 홀로서기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독립이라면,

중년의 홀로서기는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도

스스로의 삶을 돌볼 수 있는 내면의 자립입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고립이나 쓸쓸함(loneliness)이 아니라,

나 자신과 깊이 친해지는 능력(solitude)일 것입니다.

 

홀로 서는 시간을 즐길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인에게도 더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습니다.

 

숙제하듯 살아온 삶에서,

축제처럼 살아갈 삶으로

이번 여행이 저에게 남긴 인생의 화두는 간명했습니다.

 

앞으로는 무엇을 하면서 살면 즐거울까?”

 

돌아보니 저는 오랫동안 인생을 숙제하듯 살아왔습니다.

 

무엇을 해내야 하고,

어디까지 성과를 내야 하며,

맡은 임무는 완벽히 마쳐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삶을 바라보는 질문을 바꾸어보려 합니다.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면 즐거운가로 말입니다.

 

숙제처럼 살아왔던 삶을

이제 조금씩 축제처럼 살아보고 싶습니다.

 

축제에도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며,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래도 그곳에는 음악이 있고, 사람이 있으며,

웃음과 춤이 있습니다.

 

잘 사는 삶이란 모든 것을 완벽히 해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날들 속에서도 즐거움을 발견해내는 능력에 있을 것입니다.

 

이대로 가는 길, 2006

 

변시지의 황토빛 화면 속 작은 사람처럼,

거센 바람에 조금 휘청이더라도

끝내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말입니다.

 

 

서귀포공립 기당미술관의 변시지 탄생 100주년 특별기념전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황토빛 사유, 존재의 바람

2026927일까지 이어집니다.

 

제주에 가실 일이 있다면 잠시 들러 제주의 풍경 너머,

황토빛과 검은 선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과 삶의 질문들을 만나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그림 앞에서 잠시 스스로에게 물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어디서 왔으며,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리고 앞으로는 무엇을 하며 즐겁게 살아갈 것인가.

 

저 역시 그 답을 차근차근 찾아가 보려 합니다.

 

숙제가 아닌, 축제 같은 삶의 걸음으로 말입니다.

 

놀이, 1980
 
칼럼 내 변시지 그림 이미지 출처: https://blog.naver.com/anan2021/224364231753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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